레이블이 새로 나온 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새로 나온 책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장혜영장편소설 "카이네 기생"

카이네 기생
제목 / 카이네 기생
저자 / 장혜영
펴낸곳/어문학사
발행일/2010년 6월 28일
분류 / 인문-소설-한국소설
가격 / 13,000원 쪽수 / 356쪽
책사양 / 신국판/무선제본/1도
ISBN / 978-89-6184-126-9 03810
[저자와의 인터뷰]

1. 프롤로그에 회령 기생의 손자가 할머니는 독립 운동에 참여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있는데요, 마치 실제 일어났음직한 사건을 소재로 소설이 쓰였다는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번 소설을 쓰시게 된 동기라든가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여성의 삶은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배면에서부터 보여주는 축소판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광기의 제물이 되었던 근대 한국의 수난사는 여성의 삶에도 투영되어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겪는 수모는 유약한 여성에게는 더욱 민감하고 치명적인 심신상의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와 남성의 약자 보호기능은 강자의 억압으로 거세되어 여성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지켜 내야 하는 위험지대에 방치되었습니다. 보호자를 상실한 여성은 환경의 강압에 적당히 타협하고 굴복함으로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진 굴욕은 소속 공동체가 추구해온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경우 그 삶은 도덕적 지탄의 대상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전통관습으로부터의 탈선을 통해 지켜낸 것은 비단 그들 자신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안으로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남편 밖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반을 구원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 여성이 설령 기생이라 할지라도 상황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에 의해 보존 계승된 전통예술과 민족적 정서는 혈연공동체의 결집과 문화맥박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어떤 수단으로든 외압으로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사수했다는 사실은 비록 소극적일지라도 일종의 저항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국가수난의 시대에 모든 저항은 용기가 수반된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 삶의 가치를 측정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재단에 그칠 뿐 깊이와 무게까지는 가늠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결론이 도출됩니다.

2. 실제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만주와 가까운 함경북도의 회령인데요, 그 당시 시대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리얼한 묘사와 생생한 북한어가 돋보입니다. 또 소설의 구성방식도 재미있고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고충이 있으시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선의 엄격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밑바닥 인생을 예술로 녹여 정품화 하는 작업이 정형화된 이데올로기와 관습의 간섭 때문에 가치 재평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자칫 공감대를 상실할 경우 선의 결백에 흠집을 남길 수도 있으니까요.
윤리, 관습의 감시와 그림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인물의 족적을 지독하게 추적하며 글쓰기에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불만과 의구심을 해소하고 설득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생존을 위한 삶의 처절한 몸부림은 냉혹한 도덕과 관습의 얼음을 감동으로 녹일 수 있었습니다.

3. 마치 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행화는 일제시대에 일본에 유린당한 조선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여주인공 행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그림, 또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으셨나요?

어떻게 사는 삶이 바른 인생이며 그 바른 삶은 어떤 기준에 의해 검증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늘 고민해왔습니다.
더러운 흙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꽃은 썩어서 더러운 흙이 됩니다. 꽃은 더러운 흙으로 이루어졌고 흙은 아름다운 꽃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때 흙은 더럽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고 꽃은 아름답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러움과 아름다움은 원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입니다.
고상함과 평범함은 동일한 얼굴의 두 가지 다른 표정일 따름입니다.
민중의 삶은 이런 모습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는 이들에 의해 창조된다는 사실입니다.
--끝
[리뷰]
우리는 기생 하면 흔히 매춘과 패륜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설 "카이네 기생"을 읽다 보면 전통 성문화에 반하는 삶을 살았던 기생의 존재가 근대사에 미친 역할을 폄하할 일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기생의 존재는 성문화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 관습은 물론, 여성의 삶의 변화에도 홀시할 수 없는 영향을 주었다.
전근대적인 여성의 활동반경은 가무와 생육 그리고 노동이었다. 여성은 단순한 노동력이었고 생육의 도구였다. 들녘에 나가 일하고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근대를 서막으로 화려하게 등장한(유곽은 1900년 초에 등장)기생은 물질적인 생존을 위한 소비재에 불과하던 여성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미학적 등급으로 격상시킨다. 고된 노동과 가무, 생육의 압박에서 해방시켜 꽃단장에 예쁜 화장을 하므로서 여성을 아름다움의 왕위에 추대한 것이다.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교태와 요염함은 눈부신 여성미와 섹시미를 탄생시켰다.
소설에 등장하는 평양 명기 월아의 눈부신 화용월태는 피어나는 꽃도 무색할 정도이다. 주인공 행화의 청초함과 풋풋한 미모는 죽은 언어에 숨결을 불어 넣어주고 소설에 우아함과 화려한 배경을 설치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생의 등장은 노동과 생육의 도구에 불과하던 천박한 전통여성을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가락을 연주할 줄 아는 직업예인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자궁 역할을 놀았다. (물론 여성의 직업예인의 탄생에는 민간무속인과 현대교육을 받은 모던여성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이는 여성의 신분을 노동력에서 예인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소설속의 평양기생 월아와 행화는 모두 거문고와 가야금연주에 능할 뿐만 아니라 서도명창에 시서까지 잘하는 당대 여성엘리트 예인이었다.

호미를 들고 밭에서 기음만 매던 여성, 아이를 낳고 방아를 찧고 밥만 짓던 여성이 시를 짓고 가락을 울린다는 것은 여성의 지위를 미천한 존재에서 일약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문화인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소설속의 월아는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기생서재"에서 거문고와 시서, 서도창을 배운다. 행화도 월아를 스승으로 모시고 창과 기악, 시서를 사사받고 보통학교에 들어가 글공부를 한다.

기생은 예인일 뿐만 아니라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지식인이었으며 당대의 명인들이나 식자들과 상종하며 풍월을 주고 받는 지성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네들은 생육이나 집안 살림 걱정을 하는 여염집 아낙들과는 달리 사회문제와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도 관심이 많았다. 적장을 부둥켜 안고 남강에 뛰어든 기생 논개가 이와 같은 추론을 잘 입증해 준다.
실제로 소설속의 주인공 행화도 독립운동가를 구해 주기 위해 일본수비대 장교를 칼로 찔러 죽인다.

이밖에도 우리는 이 소설속에서 기생과 관련된 더욱 많은 흥미진진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섣부른 설명을 삭제하고 독자들 스스로 책을 읽고 감상하기 바란다.
--파란 블로그 "태양은 여기서 뜬다"